회의주의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명확히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결론을 유보한다는 의미이다. 아직 결론나지 않은 사안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그냥 부정적 태도일 뿐 결코 회의주의적이라 할 수 없다. 즉, 그것이 목적하는 바, 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회의주의란 명확하고 명증한 검증 절차 없이 일정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만약 일정한 목적의식이 없거나, 또는 부정하기 위한 목적에 의하여 사용되는 회의주의라는 말은, 따라서, 회의주의라 할 수 없다.
간단한 예가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그것이 주장하는 언급 자체의 엄밀성은 전혀 비과학적이지만 그 언급이 있기까지의 논리적 과정은 매우 엄밀해 보인다. 과학이 바로 그러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 된다면, 마찬가지로 한의학 역시 그것에 의하여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4원소설이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과학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의학 역시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있는 분야는, 다른 체계의 지식으로의 전환이, 일단 조금씩이라도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같은 절차를 통하여 서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어느 정도 두 체계의 융합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볼 때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한의학, 또는 아직 서양과학의 기준을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자체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비과학', '사이비과학'으로 치부하여 거부하는 것은, 지적 체계의 발달 과정이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교과서의 내용을 '공부'하는 경험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이들에게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한의학이든 현대생물학이든 무엇이든 어느 체계나 그 발전의 도상에는 여러 주장들이 대립을 하였고, 많은 논란과 검증을 거쳐 서서히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한의학은 아직 그 체계를 밟지 못한 분야에 불과하며, 따라서 회의적으로 보자면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다가오는 많은 생물학적 지식들 역시, 그 발달의 전면에 있게 되면 결코 '확정적'(definitive)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과학으로서의 생물학'에 대한 회의 와 생물학에 대한 회의, 를 넘어서 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리고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수많은 논문들을 보아도 여전히 생물학은 여러 대립되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이유로 생물학이 과학이 아니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과학의 발전 자체가 그러한 양상을 띄기 때문이며, 현대생물학은 태동한지, 길어 보아야 겨우 백여년이 조금 넘을 정도이기 때문에 아직 초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그것이 발생할 당시 '과학기술'이 매우 미천하였다. 하지만 현대생물학은 기술(technology)과 수학의 발달에 힘임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한의학이 발달할 당시의 과학기술이 지금 정도만 되었어도 양상은 많이 달라졌겠지.
나는 한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한의학적 체계와 현대생물학적 체계를 통합시키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흔히들 그와 같은 통합을 '흡수'로 간주하곤 하는데, 그것은 변형이지 흡수가 아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술과 수학의 힘을 얻고 있는 현대생물학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되므로 한의학의 현대생물학으로의 변형은 어쩌면 '흡수'로 간주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이야 어떻게 불리든, 결국 생명체를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한의학이든 뭐든 유용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는 않은가. 부정적인 태도를 회의적 태도로 착각하여 '거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러 시각을 어떠한 식으로 현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맞게끔 변형시키고, 그것으로 인하여 현재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거부를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들의 생성 단계를 보면 언제나 '느낌'과 같이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에 기반하여 발달을 하는 초기 단계가 있다. 그것이 인문학에서 말하는 '감응적 개념'일텐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것, 그것은 논문을 읽어 보면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제 읽은 'Systems biology analysis of programmed cell death'만 보아도,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가설들은 이러저렇게 검증되었다'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원래 지적 체계의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어떠한, 아직 손에 딱 잡히지는 않는 어떤 생각들이 여러 절차를 거쳐 서서히 구체화 된 이후 보다 확정적인 지식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지, 애초부터 이것이다라고 선언되지 않는다. 한의학은, 현대과학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음... 그럴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느낌'이 논리와 기술의 도움으로 밟을 수 있는 절차가 그것이 발전 당시에는 매우 미흡했기 때문이다.
ps. 이런 글을 쓰면 마치 내가 두루뭉실하게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꼭 뭐라 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수학의 엄밀성을 너무도 좋아하여 1년을 더 다니면서 수학을 공부(부전공) 할 정도이고, 지금도 어떠한 방법론을 고안하면 일단 수학적으로 정리를 하며, 코드 여기저기에 다소 압축된 수식이나 수학적 내용들을 집어 넣는다. 생물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여, 그런 식으로 생물학을 할 수는 없다, 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너무 엄밀한 기준으로 생물학을 접근할 정도이다. 비록 이럴지라도 기본적인 시각은 위와 같다. 명확한 결론 - 주로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처럼 - 이 나기 전까지는 '유보'하기.
간단한 예가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그것이 주장하는 언급 자체의 엄밀성은 전혀 비과학적이지만 그 언급이 있기까지의 논리적 과정은 매우 엄밀해 보인다. 과학이 바로 그러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 된다면, 마찬가지로 한의학 역시 그것에 의하여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4원소설이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과학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의학 역시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있는 분야는, 다른 체계의 지식으로의 전환이, 일단 조금씩이라도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같은 절차를 통하여 서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어느 정도 두 체계의 융합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볼 때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한의학, 또는 아직 서양과학의 기준을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자체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비과학', '사이비과학'으로 치부하여 거부하는 것은, 지적 체계의 발달 과정이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교과서의 내용을 '공부'하는 경험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이들에게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한의학이든 현대생물학이든 무엇이든 어느 체계나 그 발전의 도상에는 여러 주장들이 대립을 하였고, 많은 논란과 검증을 거쳐 서서히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한의학은 아직 그 체계를 밟지 못한 분야에 불과하며, 따라서 회의적으로 보자면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다가오는 많은 생물학적 지식들 역시, 그 발달의 전면에 있게 되면 결코 '확정적'(definitive)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과학으로서의 생물학'에 대한 회의 와 생물학에 대한 회의, 를 넘어서 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리고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수많은 논문들을 보아도 여전히 생물학은 여러 대립되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이유로 생물학이 과학이 아니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과학의 발전 자체가 그러한 양상을 띄기 때문이며, 현대생물학은 태동한지, 길어 보아야 겨우 백여년이 조금 넘을 정도이기 때문에 아직 초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그것이 발생할 당시 '과학기술'이 매우 미천하였다. 하지만 현대생물학은 기술(technology)과 수학의 발달에 힘임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한의학이 발달할 당시의 과학기술이 지금 정도만 되었어도 양상은 많이 달라졌겠지.
나는 한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한의학적 체계와 현대생물학적 체계를 통합시키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흔히들 그와 같은 통합을 '흡수'로 간주하곤 하는데, 그것은 변형이지 흡수가 아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술과 수학의 힘을 얻고 있는 현대생물학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되므로 한의학의 현대생물학으로의 변형은 어쩌면 '흡수'로 간주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이야 어떻게 불리든, 결국 생명체를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한의학이든 뭐든 유용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는 않은가. 부정적인 태도를 회의적 태도로 착각하여 '거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러 시각을 어떠한 식으로 현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맞게끔 변형시키고, 그것으로 인하여 현재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거부를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들의 생성 단계를 보면 언제나 '느낌'과 같이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에 기반하여 발달을 하는 초기 단계가 있다. 그것이 인문학에서 말하는 '감응적 개념'일텐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것, 그것은 논문을 읽어 보면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제 읽은 'Systems biology analysis of programmed cell death'만 보아도,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가설들은 이러저렇게 검증되었다'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원래 지적 체계의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어떠한, 아직 손에 딱 잡히지는 않는 어떤 생각들이 여러 절차를 거쳐 서서히 구체화 된 이후 보다 확정적인 지식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지, 애초부터 이것이다라고 선언되지 않는다. 한의학은, 현대과학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음... 그럴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느낌'이 논리와 기술의 도움으로 밟을 수 있는 절차가 그것이 발전 당시에는 매우 미흡했기 때문이다.
ps. 이런 글을 쓰면 마치 내가 두루뭉실하게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꼭 뭐라 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수학의 엄밀성을 너무도 좋아하여 1년을 더 다니면서 수학을 공부(부전공) 할 정도이고, 지금도 어떠한 방법론을 고안하면 일단 수학적으로 정리를 하며, 코드 여기저기에 다소 압축된 수식이나 수학적 내용들을 집어 넣는다. 생물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여, 그런 식으로 생물학을 할 수는 없다, 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너무 엄밀한 기준으로 생물학을 접근할 정도이다. 비록 이럴지라도 기본적인 시각은 위와 같다. 명확한 결론 - 주로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처럼 - 이 나기 전까지는 '유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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