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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_비분류/과학_생각

자연과학이 가치있는 이유

by adnoctum 2010. 5. 26.

2007-11-04 23:29


과학은 가치가 있는 믿음이다. 종교는, 과학적 믿음에 부여되는 가치를 요구할 수는 없다.


모델. 법칙.


   보편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 우리는 어떤 사실이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을 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자연 과학 법칙의 가장 중요한 요구 조건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물론 세상 모든 것에 이러한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석양을 볼 때 느끼는 감정, 커다란 폭포 앞에 있을 때 느끼는 경외감, 이런 것들은 객관적일 수 없다. 객관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 그런 것에서 자연 과학은 현재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철저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자연 과학은 정답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가 자연 과학이다. 수비학, 관상학, 점성술과 같이 자연 과학 역시 자연을 이해하는 인간의 독특한 방식이다. 이러한 시각들은 저마다 현상을 해석하는 "모델"을 제시해 주는데, 자연 과학에서 제시해 주는 모델이 여타의 것이 제공해 주는 모델과 다른 점은 철저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그 모델들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과학적 사실이라면 1)주어진 조건에 의해 항상 관찰될 수 있어야 하며 2)정해진 절차를 명확히 지킨다면 그 실험을 누가 하든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내가 "전부" 확인한 것은 아니라서 이 단어를 쓴다)의 과학 저널에서는, 저자에게 "다른 사람이 당신이 했던 실험을 반복하는 등으로, 당신이 사용한 실험 재료(materials)를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제공해 줄 것을 우리는 요구한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인간이 보편적인 사실, 객관적인 사실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러한 사실들은 여러 곳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용 범위가 매우 넓고,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케냐에 사는 사람이 대낮에 사과를 떨어뜨려도, 뉴욕 38번가에서 한밤중에 사과를 떨어뜨려도, 모두 "중력"이라는 "모델"로 사과가 왜 땅으로 떨어지는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 과학이 제시하는 모델은, 그 모델에 의해 현상을 이해할 때 오류가 없어야 보다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천동설이라는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고, 보다 더 적합한, 보다 더 많은 자연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지동설이 보다 자연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될 수 있었다. 


   자연 과학이 여타의 분야와 다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위와 같은 것들에서 기인한다. 즉, 세상을 해석하는 "모델"은, 그 모델로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좋은 모델이다. 만약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되면, 그 모델은 계속적으로 수정이 필요하다. 이 때,자연 과학이 요구하는, "객관성"과 "보편성"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즉 과학적 모델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가, 이 사실 자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에 의해 과학적 모델이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수정이 이루어질 때, 수정된 모델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이 두 사실이자연 과학을 보다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종종 수학과 철학 쪽에서 가장 근본적인 의문들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자연 과학이 위와 같은 사실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가장 객관적인 "수학"과, 우리가 더이상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직관"이다. 이 두 기준을 근거로 제시된 모델의 적절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수학적 기술(수치화)가 과학에서 그토록 널리 사용되는지 알 수 있다. 수치화. 그것은 인간이 개념과 실세계를 연결시키는 방법이고, 그에 따라 자연 현상을 개념화된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사과 1개와 1개를 더하면 사과가 2개가 된다는 사실을, 사과 한 개를 바구니에 넣고 또 하나를 바구니에 넣은 후 사과가 두 개라는 것을 세어 봄으로써도 알 수 있지만, "1+1=2"라는 개념화된 사실로부터 "사과가 두 개"라는 "개념"을 끌어낼 수 있고, 그 개념으로부터, 실세계에서 바구니 안에, 연결되지 않은 구체가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있을 것이다, 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화된 개념의 도움을 받아 현실 세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고, 개념적으로 제시되는 "모델"이 수치로서 제공해준 결과를 다시 현실세계에 적용시켜, 어떤 현상이 실제로 일어날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마치 impulse-function을 Laplace transformation 시킨 후 미분이나 적분을 한 후 다시 유클리드 공간으로 가져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한 개인의 "보수성"을 명확히 수치화할 수 있다면, 10년간 서울에 있는 20대 인구의 보수성 평균이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수학/통계적 기법을 통해 향후 몇 년간 서울에 있는 20대 인구의 보수성 정도를 특정 범위 안에서 특정 확률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의 "보수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처럼 사회과학에서는 현실세계의 특성과 개념화된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수치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것이 사회 과학에서 왜 자연 과학보에서보다 "누구나 인정하는 모델"이 더 적은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즉, 물체의 속도, 질량, 시간, 농도 등 자연 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철저하게 직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이용해 모델들이 세워질 수 있는 자연 과학에 비해, 사회 과학에서 다루는 것들을 이러한 객관성과 직관성을 만족시키면서 수치화한다는 것이 어렵다. 자연 과학에서는 우선 자연 현상을 수치화, 흔히 적절한 measure라고 하는데, 를 정의함으로써 연구가 시작된다, Shannon이 "정보"를 수학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이 분야는 급격히 발달하게 된다. 뉴턴이 힘과 가속도를 정의하면서 고전 역학이 태동한다. 두 분포가 다른 것을 비교하는 방법은?  그냥 적당히 다르다?  이럴 땐 relative entropy를. 두 확률 분포가 얼마나 비슷한가, 이런 것은 mutual information. "거리"는 N차원(4차원 이상)에서 metric으로 정의된다. (사실, 차원 개념이 없어도 metric은 정의된다). 이것은 또한, 왜 측정도구의 정밀화가 자연 과학의 발달에 커다란 기여를 하는지도 설명해 줄 수 있다.


   이것은 종교와 자연 과학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 준다. 종교적 "믿음"은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객관성을 요구할 수 없고,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나는,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과, 텔레파시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의 적절성을 판단한다고 할 때, 어떤 기준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람 수? 단순히 사람 수로 판단한다면, 중국에서 통용되는 상식들, 그러나 일반적 상식들에 틀린 것이 많은데, 그런 것이 항상 보다 옳은 사실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연 과학 역시 도그마이다. 자연 과학 역시 믿음이다. 그러나 자연 과학이 여타의 믿음과 다른 이유는, 그 믿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보편적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른지 끊임없이 확인해 볼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철저한 검증 단계를 거친 것들만이 살아 남게 된다. 그러나 종교적 믿음은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자연 과학적 믿음에 부여하는만큼의 가치를 종교적 믿음에 부여하고 싶다면, 종교적 믿음에 대해 자연 과학만큼 철저하고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 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 과학에 부여하는 꼭같은 가치를 종교에게도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종교와 자연 과학 둘 모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억지일 뿐이다. 이로써 칼 포퍼(?)가 왜 자연 과학을, 아직 반증되지 않은 사실들의 집합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다. 종교적 믿음이나 사회 과학적 사실들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거나,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적절한 기준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옳다는 판단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자연 과학이 사회 과학, 종교와 다른 이유이다.


   자연 과학 역시 일종의 도그마라는, 수많은 믿음의 한 종류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사실들을 모두 같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 번의 경험에서 얻은 사실을 절대 진리로 생각하고 더이상 그 사실에 변경을 가하는 것을 금하는 믿음, 실제로 관찰된 적이 없지만(그래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조차 없는) 수천명이 믿는 사실, 이런 것들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갖고 있고 일관되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수정을 가할 수 있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과연 "믿음"이라는, 모든 인간 사고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을 적용하여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는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한 나라의 운명을 판단하는 것과, 생년월일시를 이용하여 한 개인의 운명을 예상하는 것과, 초기 속도 45m/sec로 지면에서 45도 각도로 1kg의 물체를 던졌을 때 1.5초 후 어느 높이에 있고 얼마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을지를 예상하는 것에 같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어린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일어나 머리 위에 있는 선물이 산타가 갔다 놓은 것이라는 믿음,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믿음, 이런 것과 같이 자연 과학 역시 믿음이지만, 그들이 모두 믿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자연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자연 과학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다른 분야보다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여타의 분야에 비해 더 큰 것이고, 이것이 자연 과학이 가치있는 이유이다.




 

ps1. 자연 과학은 명확한 진리"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고, 그러한 것으로 설명이 잘 안 되는 것이 별로 없을 경우, 그런 것은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연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은 아직 불완전한 사실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 과학에서도 상상력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 비논리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인 자연 과학적 모델은 후에 끊임없는 논리성을 검사받게 된 후에야 "과학적"이라고 불려지겠지만. 


ps2. 노파심에, 나는 자연 과학이 만능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절대"(내가 이런 단정적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니다. 오히려 나는 현재의 한국은 인문학의 부재로 인해 뭔가 좀 정체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ps3. 이 글에 대한 조언/반박 등을 환영합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언젠가 제가 접하게 될, 그러나 시기를 좀 빠르게 해 줄 수 있는, 외국의 누구누구는 이런 이론을 제시했다, 같은 것들로 점철된 것은, 물론 고맙기는 하지만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OO가 이런 이론을 제시했는데, 넌 그거 아냐?"라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한 생각의 결과, 바로 그런 것들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이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판에 박힌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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