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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_비분류/과학_생각

과학적 진리에 대하여

by adnoctum 2010. 1. 4.

   과학적 진리. 그것은 무엇인가. 우선 구분해야 하는 것은, '과학적 언급'과 '과학적 진리'이다. 과학적 언급이란, 다소 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이며, 과학적 진리란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명확하게 입증된 과학적 사실을 의미한다고 하자. 현대 사회의 많은 주장들이 '과학적'이라는 형용사를 등에 업음으로써 객관성과 설득력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적 언급보다 더 명확화고 객관적인 '과학적 진리'조차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과학적 언급이라 해서 결코 절대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과학적 진리라는 것은 결코 '절대적 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적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설명 체계'의 하나일 뿐이다. 결코 '정답' 혹은 '진리'가 아니다.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때 유치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던 몇 가지들과 본질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자 오비탈. 전자가 관찰되는 확률이 위와 같다고 한다. 어떻게 중간(Node라 되어 있는 곳)에서는 관측이 안되는데 그 앞과 뒤에는 관측이 될 수 있을까? 1층과 3층에서는 자주 보이는 사람이 결코 2층 (계단/엘리베이터/2층 자체)에서는 안 보인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오비탈 모델로 많은 것이 설명 가능하다.


 

나 프탈렌 구조. 7-8번 결합길이가 2-3번 결합길이보다 짧은데, 유기화학 교과서에는 7-8번이 이중결합성질이 더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위의 공명 구조로 보면 7-8번은 3번 중 2번 공명 구조를 갖고*, 2-3번은 1번 갖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델에 불과하다.


    이처럼,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의 잘 구축된 체계로 목적하는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고, 그 시스템 내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예측'이라는 것이 과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예측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조건으로 상황을 전개시켰을 때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 체계 자체의 논리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반복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 실험들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재현성'이 되는 것이다. 재현되지 않는 것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측성'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짓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수비학이나 하늘의 별을 보고 운명을 예견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예측률이 높다고 증명된 바 없다. 그러나 초기 속도와 발사 각도, 물체의 무게가 주어지면 그 물체가 어느 시점에 지표면에서 어느 높이에서 어느 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을지 거의 예측 가능하다. 그것은, 뉴턴 역학이 매우 좋은 '모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태동으로 알 수 있듯이 뉴턴 역학은 양자역학의 approximation 일 뿐이다. 즉, 양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뉴턴 역학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뉴턴 역학은 과학이 아닌가? 아니다, 과학이다. 뉴턴 역학이 예측하고자 하는 체계는 양자의 세계가 아닌 거시적인 세계였고, 뉴턴 역학은 충분히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다. 흰 분꽃과 자주색 분꽃을 교배하면 어느 정도의 확률로 어느 색의 꽃이 나올지 예측 가능하다. 부모님의 혈액형을 알면 자식의 혈액형으로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 거의 예측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모델에 의하여, 암세포에 TRAIL이라는 물질을 주면 암세포가 죽는 것을 예측할 수 있지만, 또한 반복 관찰되어 알려진 바대로 일정 정도의 암세포는 내성을 갖게 된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많은 과학적 견해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뉴턴 역학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과학적 견해들은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일정 체계 내에서만 '사실' 즉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TNF라는 것은 암세포 사멸 인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잘 알려진 경로에 따라 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지만, 반대로 세포의 생존 신호를 활성화시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세포의 종류에 의존한다. 따라서 TNF가 세포 사멸에 관여한다는 모델은 몇 가지 세포 종류에 대해서만 참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지금은 당연시 받아들여지지만 TNF의 발견 초기에는 이 물질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을테고,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아니다 생존을 보장한다, 란 의견들이 대립되었을 것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지금은 'TNF와, 그것이 작용하는 시스템(세포)'를 함께 고려하여 그 역할을 얘기할 수밖에 없듯이, 과학적 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그 모델이 설명하고자 하는 일정한 경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과학적 진리(모델, 설명 체계)는 그 경계 안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과학 현상을 모델링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이 이론이 어디까지 설명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모델이 설명하고자 하는 범위를 한정짓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일정한 범위로 한정지어진 체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 설명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과학은,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 즉, 미리 가정한 것이 틀렸을 경우에는 결코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없고, 간과한 사실이 중요하게 나타날 때 역시 모델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왜 천동설이 지동설에 밀려 났는가? 그것은, 지동설이 더 많은 사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물론 이 때 '설명할 수 있다'는 '예측할 수 있다'와 동의어이다. 많은 과학적 사실/모델/진리가 그렇다. 비록 설명하고자 하는 범위 내에 있더라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 있을 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 방법/이론/모델이 나오면 그것이 보다 과학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생물학적) 과학적 사실들이 폐기되고 있고, 새롭게 만들어 지고 있다**.결코 과학적 이론/사실/진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이라 하여 맹신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 3번 중 2번은 공명 구조를 갖고 한 번은 안 갖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유기화학 교과서에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가 1분은 말이었다 1분은 당나귀였다 하는 것이 아니듯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공명 구조는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합쳐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 한 예: NEMO/IKK regulates an early NF-B-independent cell-death checkpoint during TNF signaling, D Legarda-Addison, H Hase, M A O'Donnell & A T Ting, Cell Death Differ 2009 16: 1279-1288;

advance online publication, April 17, 2009; 10.1038/cdd.2009.41.


RIP이라는 것이 신호전달을 통해서만 세포 생존을 보장하는 것에 관련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전에도 세포 사멸을 억제하고 있다는 내용. TNF 경로에 대한 모델이 또 살짝 변경되었다.


ps. 이와 같은 과학의 성질을 고려해 보면 종교와는 그 목적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현재 기독교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천동설을 폐기하고 지동설을 인정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없어지지 않았으니, 그 목적조차 다른 종교과 과학을 뒤섞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느니 차라리 기독교 체계를 유지하면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조설은 사주팔자로 미분 계산하는 꼴이다.


ps2. 수학과 자연과학은 차원이 다르다. 자연 과학은 기본적으로 '현상에 대한 관찰'에 기초한다. 그러나 수학은 그 자체로 엄격한 체계를 순전히 추상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수학에도 관찰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증명 방법'에 있어 수학은 자연 과학과 비견할 수 없을만큼 정밀하고 엄격하다. 수학은 '이것이 맞다, 그 어떤 경우에도 틀리지 않는 것을 보여 주겠다'로 하여 "모든" 경우에도 틀리지 않는 것을 증명해 낸다, 혹은 "모든" 경우에 맞는 것을 증명해 내거나. 반면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귀납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경우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과학적 이론은 언제나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범위에 갇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경우를 설명할 수 없다, 자연 과학은. 한 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이론이 설명해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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