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6
05:50
"전, 그래도, 아직 너무 hypothetical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결국, 어디까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와, 이야기를 매우 명확하게 주장하기 위해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정리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해서 그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겠지... (더구나 난 불친절해서 이런저런 잡스런 얘기는 빼고 핵심만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래서
이 책을 더 좋아하기도 하니까...)
태도. 태도, 그 자체로 보았을 때 완벽주의는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무엇인가를 끝마치려 하는 태도는 옳지 않아 보인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며칠 밤을 새면서 확인을 해야 한다. 비단 컴퓨터로 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실험도 비슷해서 며칠,
랩후배 말로는 '반짝' 실험을 하기도 한다. 우선 어느 정도 말이 된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쉽게 끝마치지는
못한다. 어제 교수님과, 같이 연구하는 아이와 미팅을 하면서 나의 이와 같은, 일을 쉽게 끝마치지 못하는 사태에 대한 원인을,
새삼 깨달았다. 너무 완벽하게 끝내려는 것. 사실 그것은 완벽하게 끝내려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채 불가능한 것을 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로 하던 것은 컴퓨터로 하는 일이었는데, 흔히
생물정보학이라 일컬어지는, 전공이 아무래도 생물인지라 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컴퓨터로만 해서 나온 결과를 믿기 어려웠고,
그래서 나는 항상, 정말 항상, 내가 만들어낸 데이터를 믿지 않았다. 확신할 수 없었다. 실험을 하지 않았거든. 뭐, 실험을
했다고 해서 99% 확신을 할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하물며, 실험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떠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일단 컴퓨터로 데이터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해야 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증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었다. 그러다 보면, 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 뭔가를 주장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더이상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어찌 보면, 현재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실험으로 확인할 가설을 찾기 위한 것이고, 후에 실험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실험을 해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확신을 갖기는 힘들텐데, 어쨌든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어야 했기에, 계속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나를 생각하는 것은 좀 모순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결국 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 컴퓨터로는 그 무엇을 해도 내가 원하는 정도의 확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지금 하는 일에서 또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 그래도, 아직 너무 hypothetical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단 여기까지 끝내고, 그리고 다음 연구를
하는 것이지. 지금 너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의 논문에서 보여줄 수는 없어. 같이 연구하는 사람조차 꽤 오랜 시간을 들어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논문 하나로 이해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거야"
"형, 이 정도면
충분하다니까. 어차피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잖아. 우린 그걸 갖고 하는 거고"
물론 이와 비슷한 류의 일을
하는 논문들을 읽어 보면, 좋은 논문은 분자 수준에서의 기작(molecular mechanism)까지 실험을 하고, 아니면 실제
사람(환자)에서 대량으로 (오랜 기간동안 추적조사를 하면서) 만들어낸 데이터이거나. 그렇지 않고 그저 그런 논문들은 그냥
컴퓨터로 '이런 것도 가능해요' 정도로 하고 끝낸다. 후자의 논문들이 주로 생물정보학 관련된 논문들인데, 난 안 믿지. 일단 분석
재료가 되는 raw data 자체도 좀 그렇거든. 원본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아무리 올바르고 좋은 통계 기법을 써도
문제는 해결되기 힘드니까.
어차피 자연과학이 귀납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명백한 한계이고,
더구나 생물학은 관찰 대상 - 생체(사람) - 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한계와 관찰 그 자체의 한계 - 현미경... 등 -
때문에 이론의 정립이 매우 더디며 그 과정에서 잘못된 이야기들이 꽤나 많이 나오는 동시에 오랫동안 받아들여지는 분야이니까. 다른
(자연과학) 분야에서 보았을 때는 단지 사실들을 나열하는 (descriptive) 것으로 이루어진 분야인 생물학이 과연 과학이냐,
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모델'의 이해를 위해서는 조금(?)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다른 분야에서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 외부에서 접하는 것은 그 '배경지식'이 제거된 상태의 '사실들'이기 때문에 생물학이 단지 '암기'하는 분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정교한 이론이 정립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는 약하지만.
생물학 자체가 이런데, 그런데, 그런 분야에 있으면서 나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곳이 어디까지인지, 뭐..., 내 마음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일단 그러한 것을 인지한 후에 그 안에서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렇게 하면 더 좋게 되여"라는 것이 있을 때, 난 주로 그렇게 해보니까 더
좋게 나오더라, 이런 것이 아니라, "생체는 robustness를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할텐데, 그 개념을 이쪽 TNF
signal에서 A20와 CYLD의 negative feedback에 적용했을 때, basal하게 activation 되어 있는
CYLD 쪽과, TNF-induced A20의 activation이 이런 식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며, 따라서 중간에 이런 단백질이
이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되구여, 찾아 보니 이런 게 있네요" (이건 그냥 예다) 처럼, 주로
top-down/bottom-up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사람을, 비록 생물학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쉽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bistability, robustness, hysteresis, sensitivity 와
같은 용어/개념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signal transduction과 같은 세부 분야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서... 1
결국, 어디까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와, 이야기를 매우 명확하게 주장하기 위해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정리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해서 그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겠지... (더구나 난 불친절해서 이런저런 잡스런 얘기는 빼고 핵심만 얘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래서
이 책보다는
이 책을 더 좋아하기도 하니까...)
- 어느 연구에서 전문가들을 조사해 보니 그들은 top-down과 bottom-up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나도 전문가가 되기 위해 흉내를 좀 내보고 있다. top-down은 커다란 이론에서 시작해서 실제 사례들에 적용하는 것이고, bottom-up은 그 반대라 할 수 있겠다. 나같은 경우, 생물학 실험 논문(완전 실험 데이터들로 채워진)을 읽으면서 system level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하고(bottom-up), 특정 형태로, 가령 외부 자극의 요동(fluctuation)에 대해 어느 정도 일정하게 반응하기 위해 negative-feedback이나 hysteresis를 만들어 놓아야 할텐데 신호전달쪽에서 특히 이 부분이 그렇겠구나(top-down), 란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이론에서만 놀았다. 공허하더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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