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2 22:22
"그런 애들 많잖아요. 하다 그만 두는 애들."
" 이제 OO도 논문을 하나 쓰는 거야?"
"일을 하다 보면 세세한 것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러한 문제들을 잘 해결해야지, 그러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두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낸 아이디어로 해서 해결되면 좋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누가 끝까지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애들 많잖아요. 하다 그만 두는 애들."
지금, 다른 실험실
아이와 같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쪽 실험실은 computational work을 잘 하고, 우리 실험실은
생물학 쪽에 좀 더 강하고. 논문이 반 정도 진행되어, 오늘 두 교수님과 학생 둘, 이렇게 넷이 모여 한 시간 반가량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만들어 낸 데이터와 앞으로의 진행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교수님이 중간에 나에게
" 이제 OO도 논문을 하나 쓰는 거야?"
라 하시며 저와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어찌 보면, 내가 여태까지 나의
성향에 대해 완벽주의적이라 생각했던 것 중 상당수는 일의 세세한 부분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 쉬워 보여도 직접 해보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이 여러 문제들을
만날테고, 나만 특별나게 완벽하게 하려는 것도 아닐테니, 내가 여태까지 일을 진행시키다 중간에 그만 둔 것에 대해, '나는
완벽주의라 그래요.'라 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가?
일단, 나는 조금은?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것은
맞다. '순수함/homogeneous'를 되게 좋아하고, 무결성, error-tolerant, robust 같은 단어들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일을 하다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싶으면 거기서 고민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진다. 한 예가,
발생학/세포생물학 등을 배우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고민 때문에 톨스토이의 인생론, 쇼펜하워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우파니샤드 등과, 인지심리과학에 대한 글들까지 내려간 것.
그런데 그런 것은 이제 그만 해야 하겠지. 일단 중요하지
않게 생각된다면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잠시동안은 대충 해 놓아도 될 것 같다. 그러지 않고 계속 부분적인 문제에
걸려서 고민하고 있다면, 더구나 그러한 고민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라면, 우선은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완벽하게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아주 안 한 것보다는 얻어낼 수 있는 가치 있는 정보가 더 많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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