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6 14:48
그 옛날에 비하면 소통의 방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보다 많은 교류를 낳고, 이것으로 인해 인간의 발달, 즉 '개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쉬울 것이란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여 소통이 아무리 쉽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인간이 개방성을 갖는 것은 지극히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소통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 인간이 폐쇄적 성격, 즉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는 것은 모조리 거부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 그는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갖는 사람들하고만 아주 잘 소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점점 더 급격하게 꼴통이 되어갈 뿐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00년 전 어느 마을에 아주 고집이 센 꼴통이 있었다고.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 몇몇으로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결국 그들과 이루는 조화가 조금씩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것들은 죄다 제껴 버리고, 오로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인터넷의 어느 곳에서 찾아 '거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잖아.'라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굳혀 나갈 것이다.
따라서 기술의 발달, 특히 소통을 쉽게 해주는 기술의 발달은, 개방적 인간을 많이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거나, 아예 생각이 완전히 다른 여러 그룹을 만들어 내는, 완전히 상반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는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 미몹 백업함.
그 옛날에 비하면 소통의 방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보다 많은 교류를 낳고, 이것으로 인해 인간의 발달, 즉 '개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쉬울 것이란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여 소통이 아무리 쉽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인간이 개방성을 갖는 것은 지극히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소통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 인간이 폐쇄적 성격, 즉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는 것은 모조리 거부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 그는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갖는 사람들하고만 아주 잘 소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점점 더 급격하게 꼴통이 되어갈 뿐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00년 전 어느 마을에 아주 고집이 센 꼴통이 있었다고.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 몇몇으로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결국 그들과 이루는 조화가 조금씩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것들은 죄다 제껴 버리고, 오로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인터넷의 어느 곳에서 찾아 '거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잖아.'라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굳혀 나갈 것이다.
따라서 기술의 발달, 특히 소통을 쉽게 해주는 기술의 발달은, 개방적 인간을 많이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거나, 아예 생각이 완전히 다른 여러 그룹을 만들어 내는, 완전히 상반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는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 미몹 백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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