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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노을과풍경

행복에 대한 단상

by adnoctum 2008. 7. 18.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해지기 쉽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대체로 행복이란 욕망의 충족을 의미하고, 현대 사회에 있어, 특히 한국 사회에 있어, 욕망의 충족을 말함에 있어 그 욕망이란 '타인의 부러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유독 다른 사람들의 눈에 신경을 쓰는 사회적 풍토 때문인지, 공동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에 무디고 따라서 '개인'으로 표현되는 '자아'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인지, 한국에서의 '성공'이나 '삶의 목표'란 대체로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언뜻 보면 이런저런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보면, 그렇다.

    물론 카프카의 단편 중 '단식광대'나, 허영은 가장 늦게 없어지는 인간의 욕망이라던 누군가의 말이나, 학문 등의 최종적 목적 또한 결국은 허영이라 말하던 누구(누구? 쇼펜하워?)나, PCR을 개발했던 케리 멀리스가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것이라거나, 미네르바 성냥갑의 한 구절 중 요즘 사람들은 사생활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던 구절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꼭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네카 역시 그 옛날, '장신구를 주렁주렁 메달고 다니는 저 여자들을 무인도에 데려다 놓으면 그 어느 것 하나 필요치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의 허영은 어쩌면 인간 근원적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집단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타인에게 좋게 보여야 했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쓸 수밖에 없게 되어 왔고, 그렇지 않았던 개체들은 사라졌을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인간의 허영이란,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우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만약 우리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다면, 과연 '나'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독불장군처럼 혼자 잘난 맛에 살아가도 안 좋겠지만, 진정한 '나'에 대한 자각 없이 남들의 부러움이나 구걸하며 사는 삶 역시 안 좋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나'에 대한 자각, 진정한 자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겠고, 그 후 사회와 조화를 이루되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그 조화를 즐겨야 하겠다. 한마디로, 돈이든 명예든 학벌이든 권력이든 예쁜 아내든 잘나가는 남편이든, 자신이 느끼는 행복의 근원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부러운 시선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매우 적음을 명심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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