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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한국과 내가 살고 싶은 세상

by adnoctum 2012. 12. 20.



   이 글은 계속 추가될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없다면. 마치, 한국인들이 저 아프리카의 쪽팔리아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내가 한국에 무관심해지지 않는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의 국민적 수준은 내가 원하는 사회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너 혼자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갖고 살아 가고 있다고 말하지 말자.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전세계가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을 모른 채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북한 사람들이 세뇌당한 자신들의 기준을 갖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너희는 충분히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지 않는 것, 혹은 이슬람권 국가에서의 그런 일, 혹은 신분제 사회에서 주인님을 모시고자 하는 노예, 모두 다 자신들은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갖고 잘 살아 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도 딱 그 상황이다. 충분히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갈 역량을 이미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단계로 회귀하는. 


이제 한국은 정말 희망이 없다. 난 지난 대선을 그 전환점(tipping point)로 봤고, 그 연속선 상의 일이 이번 대선 결과에 드러났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이제 한국이 멕시코처럼 되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방증한다. 



   천만의 국민이 투표를 하지 않았고, 천오백만의 국민이 인권변호사가 아닌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 자랑스러운가?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일본의 속국이 되어 경제나 성장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한국을 얘기해 보자면 이렇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최우선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남겨 놓아야 할 업적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권에 대한 시도가 몇 번 있을 것이며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가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대기업 혹은 가진 자들에게 보다 더 유리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도움을 크게 부풀려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다, 라고 할 거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결코 그렇게 말하기 힘든. 

   박정희의 역사적 재조명이 조금씩 공론화될 것이며 언젠가 최소한 한 번은 그를 위한 기념일 제정이 시도될 것이다. 물론 다른 잡것들이 붙을 수는 있지만 그 핵심은 그 아버지가 될 것이고, 이름은 '산업화 한국'의 발판을 마련한 위대한 사람들, 처럼 그가 밖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간접세가 결국 오를 것이다. 수도세, 전기세, 통신, 교통비가 전부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비용이 오르는 것에 크게 반감을 갖지 않을 수는 있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상당히 오르게 될 것이다. 뭐, 누가 따지겠냐만은. 

   과학기술쪽은 여전히 환경이 나쁠 것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연구원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살아갈 것이며, 여러 연구소의 민영화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기초과학 쪽은 지금보다 더 열악해 질 것이다. 대신 몰빵이라 불리우는 차등화가 더 심해져 KAIST, POSTECH, SNU 같은 곳은 더 좋아질 수 있겠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실적이 한국의 과학순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통계로 보면 그리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수 있겠다. 단지 그러한 곳을 졸업한 사람들이 갈 곳이 한정적이고 가서도 환경이 좋지 않을 뿐, 지금처럼. 

   교육. 이건 답이 없다. MB의 비리가 대부분 덮어지기 때문에 KU는 득을 좀 볼 것이다. 딸랑거리는 파가 득세하는 그곳에 결국은 어딘가에 MB 상이 세워질지도 모르겠다. 사학비리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될 것이며, 등록금은 계속 더 오를 것이고 (미분값 > 0),  역사교육 축소를 위한 명분으로 국영수, 특히 영어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을 것이다. 

   여론은 이제 조금씩 탄압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그래 왔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검열을 시작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을 때 여자들이 선거를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것처럼. TV에서는 인기있는 드라마가 자주 방영될 것이다. 오락프로도 많아지겠지. 국가기관에 의한 명예훼손소송 혹은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등의 기본적인 절차조차도 무시한 공권력의 행사가 자주 있겠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할 뿐더러 사람들도 무심하게 지나기 때문에 점점 더 언론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 넣으면 튀어 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집어 넣은 후 물을 끓이면 튀어 나오지 않고 결국 죽는다는 얘기가 정확히 한국의 상황과 일치한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냐고. 아마도 자신한테 직접 위와 같은 일이 닥치고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극단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vendetta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하는 일을 거치지 않고서 정상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없다. 망하는 나라가 어디 한 순간, 하루 아침에 망하는가?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로마는 하루에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하루에 망하지도 않는다. 


   

최초 작성일: 2012.12.20.14.26





   내가 싫은 것은 바로 무뎌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시하게 되는 것, 그러한 것이 점점 더 증가하게 되는 것. 사회가 더러울수록, 수많은 부정부패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어 자행될수록 나 역시 그러한 것에 무뎌지고 말 것이다. 신호등을 위반하는 것처럼. 결제서류의 비용을 보고할 명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이러한 것이 관행이 되어버렸기에 누구나 죄책감 없이 행하는 것처럼. 이것은 마치, 시험을 볼 때 누구나가 부정행위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이 나쁘게 나와 결국은 자신도 부정행위를 하게 되는, 처음에는 순수했지만 결국 현실에 극복해 버리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이. 한국에는 그러한 것이 굉장히 많고, 지금도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주장해 보았자 기껏해 봐야, 너만 그렇게 깨끗하냐, 너도 찾아 보면 뭔가 꼬투리가 있지 않느냐, 너무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 이상적이다, 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지금의 한국 사람을 누구나가 살기 위해 마약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가져다 놓는다면 그래도 한국인들은 어떻게 하든 처음에는 마약에 손을 대려 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 "여기선 살기 위해 누구나 마약을 팔아야 해, 마약을 팔고 인신매매를 하려 하지 않는 넌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모르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을 과연 어떻게 대할까? 그러한 말을 듣자 마자, "그래, 이것이 현실이지. 나도 비록 한국에 있을 땐 상상도 못했지만 여기선 살기 위해 마약을 팔고 인신매매를 해야지", 라고 곧바로 수긍할 수 있을까? 아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깊은 고뇌를 할 것이다. 내가 바로 그 상황인 것이다. 나에게 이 한국은 충분히 더 나아질 역량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것을 거부한 채 더 나빠지려는 선택을 한 것이며, 그 나쁜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 보다 더 '사회적' 혹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만약 나의 시각이 비관적으로 보인다면 이미 사회에 물든 것이다. 이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를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명목 하에 인정하고 그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가졌던,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 하는 고민이, '흥, 너무 이상적이야. 누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 모르나. 현실을 보라구', 라는 조소로 변해버린 것이다. 난 내가 그렇게 변하는 게 싫은 것이다. 내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도덕적 기준에 닿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무뎌지고 그래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되는 그 상황이 싫은 것이다. 새벽 3시에 왕복 8차선 도로에 아무도 없어도 난 신호등에서 선다. 그리고, 가끔은 무단횡단을 하는데 그 때는 걸리면 벌금을 물고 사고가 나면 내가 많은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한다. 쓰레기도 절대 길에 버리지 않고, 길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에도 절대 버리지 않고,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린다. 시험에서는 결코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 과제를 베끼지도 않는다. 너무 깨끗한 척 하는 것 같다고? 아니, 난 내가 스스로 정한, 궁극적으로 많은 이의 이득을 꾀할 가능성이 높은, 그러한 규율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래서 안 지키고, 저래서 안 지키고, 그렇게 예외가 점점 늘어나게 되면 나중에는 끊임없는 합리화 속에 그 규율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된다. 난 그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지저분해지면 질수록 위처럼 하기 힘들어 진다. 왜냐 하면, 다들 안 지키는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에 나같은 사람은 조소밖에 받을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보다 각박해진다. 내가 혼자 잘나서 위처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이 위처럼 행동하면 할수록 사회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1차 추가: 2012.12.20 21:55 





   나는 보다 많은 사람의 행복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 수준, 또한, 문화적, 지적 수준에 관심이 많다. 그러한 것들이 결국 사회의 제도적 발전을 가져 올 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될 때에서야 비로소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공정한 경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을 살면서 다른 그 어딘가 누군가의 불행을 항상 걱정하며 살 수는 없다. 당장 나에게 직접 닥친 일들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당하는 불합리함에 대해 소리 높여 정의를 외치기 힘들다. 즉, 우리가 누군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당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요구해야 하는 것은 사회 자체가 정당하고 올바르게 흘러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우한 이웃만을 위해 살 수는 없지만 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우한 이웃을 돌보려는 시스템을 완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점점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내 삶에 충실하면서도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상과 현실에 대한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올바르게 돌아가는 사회일 때에서야 비로소 나의 행복 또한 정당하게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난 선거가 바로 그러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내 주변의 모든 불행과 비합리적 사태, 부정한 상황에 대해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제도적으로 그러한 것을 억제하게끔 하기 위하여 그것을 제대로 행할 수 있을만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는 것. 그것이 선거다. 나 잘 되기 위하여 하는 것도 물론 포함되어야 함이겠지만 이러한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떠나려 한다. 나의 이 사회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 반해 이 떠나려 한다는 사실은 나를 도망자로 보이게끔 한다. 이러한 말을 여러 명 에게서 들었다. 그런데, 당신이 용산철거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나라의 앞으로 닥쳐 올 불행(그것을 겪는 이들은 결코 자각하기 힘든)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라면 비약일까? 난 마찬가지라고 본다. 나에게 도망자라 손가락질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 스스로는 이타적인 가치관을 갖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면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일신의 안녕만을 위해 행동하면서 그것의 정확히 같은 양상인 나의 떠남에 대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다소 모순처럼 보인다. 한두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서 이러한 말을 들어 왔기에 여기에 이 말을 적어 두는 바이다. 

   그리고, 내가 떠나려 하는 것, 국적을 버리려 하는 것은 이 나라의 공권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 나의 국가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버리고자 함이 아니다. 차라리 일본인으로 귀하하여 한국 정부를 마음껏 비판한다면 미네르바나 김OO 연구원처럼 내부비판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듣도보도 못하던 잡것이 아무리 떠들어 봐야 공권력은 무시를 하기에 내가 이러한 생각 때문에 국적을 버리려 한다는 것이 나를 뭔가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중시하는 것은 내가 잡놈이거나 말거나간에 언제나 우리에겐 공권력의 무분별한 행사가 행해질 수 있다는 그 상황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국적을 유지하면서 예전처럼 그리고 더욱 더 비판해도 공권력이 가해지기는 커녕 조소만 받을 수 있을지라도 나 이외의 누군가가 공권력에 의해 조정당하는 상황이 계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비판에 대한 한국인들의 끊임없는 어리석은 반응도 마찬가지. 일본놈이 되어 한국의 잘못된 점을 비판할 수 있다면 제아무리 무시하고 욕하려 해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마음 속에 남는 꺼림찍함이 있을테고, 그것이 어쩌면 그를 바꾸어 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국적을 버리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송두율 교수가 한국국적이었으면 감옥에서 몇 십년간을 살고 있겠지. 


   나의 안녕만을 위해 살아가면서 사회의 커다란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안녕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태로 번질 것이다. 일제강점기 하에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보며 뭣하러 저러나, 나처럼 그냥 열심히 농사나 지을 것이지, 하는 이는 결국에는 일제의 끊임없는 수탈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어 올해 정직하게 지은 수확물을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처럼. 골목의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 대형마트에 관심을 갖는 정당에 한 표를 행사하면서도 서민들의 삶이 왜 이리 어려운가 왜 내 가게의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가, 를 고민하는 누군가처럼. 전기세와 수도세가 오르고, 등록금이 올라 생활이 점점 쪼달리지만 정권이 바뀌든말든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기에 투표를 하지 않는 누군가처럼. 연구원들의 신분이 점점 불안해지고, 많은 국책연구소가 민영화되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 불만이지만 끊임없이 그러한 정책을 지원해 온 정당에 한 표를 행사하고도 이 나라의 연구환경은 너무 안 좋다고 불평하는 누군가처럼. 의료민영화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고 불평불만만 가득한 사람처럼 보이고 괜히 호들갑떠는 것처럼 보인다며 무시하지만 왜 약값이 두배가 되었는지는 아리까리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처럼. 부당하게 대우받는 5명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그 부당함이 6번째인 나에게 닥쳤을 때 아무리 외쳐봐도 나머지 사람들도 내가 전의 5명에게 무관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6번째의 부당함을 당하는 나에게 무관심할 뿐이다. 다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권리도, 자유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커다른 흐름 속에 자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알지 못한 채 내 일신의 안녕만을 꾀하려 한다면 언젠간 반드시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야 말 것이다. 물론 그 영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왜 자신의 상황이 지금처럼 어려워졌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력을 알기에 사회가 정당하게 돌아 갈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여태까지 수많은 무임승차를 해 왔으면서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가정을 버리고 그 정당함을 요구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할 수 없기에 우리는 작으나마 사회의 공정함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가 나의 참여를 보장해 줄 때 열심해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2차 추가 : 2012.12.21 16:42




   가정을 하나 해보자. 내가 물자를 운송하는 사업을 아주 잘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리저리 주판알을 튕겨 보니, 만약 일본이 한국을 침략 후 중국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물자운송이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일본이 한국을 침략만 한다면 나의 사업이 아주 번창할 것이다. 나는 앞장서서 일본놈 앞잡이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무엇이든 운송을 하는 것이 나의 천직이기에, 굳이 내가 일본놈들 군수물자를 운송한다고 해서 나로선 딱히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위처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독립군들을 토벌하지도 않고 단지 변하는 정세와 맞물려 나의 사업이 번창하게는 될지언정 위와 같은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어질 정권의 추악한 행위(전비를 보고도 그것을 알 수 없다면 부정과 불의, 부패에 무뎌진 자신을 뒤돌아 보길)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시스템의 그 어떤 부정적 요인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모든 행위는 부정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은 부패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도, 부패한 시스템에서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부정한 것이다. 나는 법의 테두리가 아닌 도와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개인적으로 보자면야 수도가 민영화가 되든, 공항이 민영화가 되든, 한전이 민영화 되든, KTX 가 민영화가 되든, 기름값이 오르든, 등록금이 오르든 나에게 피해가 되는 것은 거의 없다. 문제는 위와 같이 시스템이 부정해 지는 것이고, 거기서 나는 십중팔구 이득을 취하는 길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조중동을 그리도 싫어하지만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나와 관련된 혹은 내가 직접 나오게 된다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이런 글을 힘들여 강조하며 쓰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강건하고 심지가 굳어 조금의 고뇌도 없이 내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할 수 있다면야 굳이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지만, 흔해 빠진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한 나는 그러기가 힘들기에 차라리 시스템이 깨끗하다면 그 끊임없는 부정에의 유혹이 없어 고민하지 않아도 착하게 살 수 있을텐데. 그리고, 이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어디, 사회적으로 부패하고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자체로 나쁘겠는가, 썪어빠진 시스템에서 살다 보니 끊임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을만한 유혹을 받다가 어느 순간 변해버린 것이지. 사람 일이란 것이 쉽게 장담할 수 없기에 나 역시 이러한 사회에 살면서도 끝까지 부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 한 50년 정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것이며, 소득분포는 bimodal 하게 계속 벌어질 것이고(따라서 평균은 유지되거나 오르겠지), 잡도둑이나 강도 등의 사회불안요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부패에 지금보다도 더 무뎌질 것이다. 


3차 추가: 2012.12.30 01:06







   한국은 비록 폭삭 망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본처럼 침체에 빠질 것이며, 이것은 적어도 50년은 갈 것이다. 지식인은 침묵하고, 언론은 권력의 시중을 들고, 검찰과 경찰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와중에, 진실을 말하는 자는 처음에는 무시를 받다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때가 되면 법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할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는 것처럼. 언론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이 사라진 이번 정권에서의 기조는 탈만 바꾸어 쓴 새로운 정권 하에서도 여전할 것이며, 이것은 그 이후에도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북괴놈들이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하였다. 만약 내가 인공위성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북으로 가고 싶지는 않겠지. 마찬가지로, 비록 이 정권 하에서 자신의 분야가 발전을 한다 하더라도 공정성이 훼손되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살고 싶을까?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일신의 영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당장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 하여 자명한 부패와 부정에서 눈을 돌리고 오늘도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4차 추가: 2013.01.0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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