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는 퐁트넬의 [세상의 다양성에 관한 대화]를 다시 읽었다. 17세기 말에 글을 쓴 그는 열린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과학 문제에 대한 대화자로 여자를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유동성과 함께 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종족(인간의 형상이든 아니든)의 존엄성과 지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그는 하위 인간의 예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를 인용하고 있는가? 바로 검은 피부의 지구인이다. 그는 달이나 목성의 주민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의 지구인들은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놀라운 지성과 열정으로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부인에게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로 여자들에게 적합한 일, 즉 세속적인 대화로 돌아가라고 권유한다." - [[미네르바 성냥갑]] by 움베르토 에코 의 "[몰타의 유대인]을 무대에 올리는 방법" 편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기조차 힘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지금 뒤돌아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있기도 하고, 미래에서 지금을 뒤돌아 보면 어떻게 저 때는 그렇게 했을까 하는 것이 있겠지. 그런데,
"그 뒤부터는 일개 가난한 농부의 생활을 하며 관리가 되라는 권유를 수차례 거절하였다. 그(도연명) 자신 가난하였으므로 연명은 가난한 사람들과 벗이 되어 살았다. 그런데 자식들이 가난하게 자라서 보통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을 한탄하여 그 아들들에게 준 편지에서만은 어버이다운 애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팽택의 태수가 되어 집을 떠나 있을 때, 집에 있는 아들들에게 한 사동을 보내어 나무하고 물긷는 일을 돕게 하였는데, 그 때 그 편지에 이런 말을 써 보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람의 아들이니 학대해서 부리지 말고 잘 대우하라.' " -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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