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oric restriction, 우리 말로 대충 해보면 식이제한조절 정도?. 수명(life span)을 늘리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regime, caloric restriction. 이것은 현재 과학적 지식으로 보자면 거의 확실한 방법이라 한다. 대략 30% 정도 평소에 먹는 정도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주서 들었다. 그런데, 두 끼에 몰아 먹는 식으로 하면 오히려 더 늙는다는. ㅋㅋㅋ 맨 처음에 CR 이 생명연장에 효과적이라 했을 때, "어, 난 매일 하고 있는데?" 했더니, 몰아 먹으면 더 늙는다고 >.<"" 타고난 일꾼 채질인지, 농사처럼 몸을 놀려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난 별로 먹지를 않는다. 엊그제 큰조카가 저녁 6시만 되면 살이 찔까봐 아무것도 안 먹는다 하길레, "그래? 삼촌처럼 많이 자. 그러면 밥 때를 놓쳐서 굶게 되고, 그러면 살이 빠져." 정말로, 한 때는 너무 늦게 일어나 점심조차 학교 식당에서 먹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뭐, 그 때는 물론 아침을 먹고 잤으니 어쨌든 하루에 두 끼는 먹긴 했는데, 그래도, circadian rhythm이 깨져서 그런지 몸이 축나긴 하더군. 지금은 다시 원상복귀 시켜서 적어도 점심만큼은 배고프다가 먹을 정도로 일어 나기는 하는데, 왠간해선 두 끼를 먹게 되고, 세 끼를 먹으면 너무 많이 먹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 쳇, 왜 이런 건 CR로서의 효과가 없는 것이여. 아... 광합성 하고 싶다. 난 직사광선도 좋아하는데 광함성만 되면 정말 최고일텐데... 생화학 배울 때 (Lehninger 3판 19장이 광합성이었지, 아마) 이놈의 광합성은 어렵기도 했지만 내가 하지 않는 것이라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
요즘 하루에 한 번 정도, 예전 랩에 있던 사람이랑 같이 discussion 을 하는데, 정말 좋다. 아무래도 우리 랩에선 computational 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혼자 고민하는데, 그 고민의 테두리 자체가 이미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짱구 굴려도 좋은 생각 나오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이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바로 이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보다 똑똑한가 보다 타인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잘 기울이느냐가 한 사람이 발전하는데 관건이란 얘기. 갑자기 예전에 써 놓은 글이 생각나는군. 오늘의 정처없던 얘기는 그 글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왜 이공대생들의 대화는 답답해질까?
그건, 논리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 하면, 논리란, 그 형식의 정확성만을 보장해 줄 뿐이기 때문이죠. 누군가의 말처럼(아마 쇼펜하우어일듯...), 코끼리의 날개색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리 논리적으로 답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틀린 것이죠. 왜냐하면, 기본 가정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얼마 안되는 자신의 개인적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굴려서 논리적으로 답을 찾아내도 결국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래서 그 '논리적' 과정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자신의 그 좁은 지식에만 의존하여 만들어진 사실(혹은 결론)은 항상 2%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답답함은, 그 사람이 논리적이긴 하나, 갖고 있는 소재가 적을 때 더욱 심해집니다. 똑똑하기는 하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이것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생각의 폭이 좁다는 것. 그랬기 때문에, 공자는, "내가 하루 종일 식사도 하지 않고 (吾終日不食), 밤이 새도록 잠도 안 자고 생각해 보았으나 (終夜不寢), 무익한지라 (以思無益), 배움만 같지 못하더라 (不如學也)" 라고 했으며, 쇼펜하우어는,
"같은 물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이 둔해져서 결국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성도 같은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으면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라고 한 것은 아닐런지.
비교적 논리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의 범위가 아주 빠르게 확장되어, 나와 대화 상대 모두, 처음 그 대화를 시작할 때 갖고 있었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오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같은 이야기가 자꾸 반복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매우 서투르다는 것을 방증하며, 또한, 논리라는 그 형식이 제한된 지식과 사실에 적용될 때, 어쩔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도 문학과 상상력, 직관과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리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 논리가 '전부'는 아니라고...
수학의 그 엄밀함이 좋습니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공부했었습니다(super-senior...) 그러나, 제가 수학을 공부하고 난 후 느낀 것은, 전제가 틀리면 그 엄밀한 수학도 틀릴수밖에 없으며(틀린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옳은 결론을 도출한다면, 과정에 분명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이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주장(과학적 주장이든 뭐든, 그 어떤 주장이든)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한다면, 우선 그 가정의 옳고 그름부터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엄밀하고 정확한 절차는 그 다음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여, 정확한 논리로 지리한 싸움을 지속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수학을 포기하고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동료 수학자 이야기를 들은 수학자 가 말했다. '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을 하기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 - 사라와 함께 하면 수학이 즐겁다 by 사라 플레너리 중에서.
독서. 명작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을 읽어 보는 것이 논리적인 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플라톤의 '향연'이나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같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느냐 말하겠지만...
요즘 하루에 한 번 정도, 예전 랩에 있던 사람이랑 같이 discussion 을 하는데, 정말 좋다. 아무래도 우리 랩에선 computational 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혼자 고민하는데, 그 고민의 테두리 자체가 이미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짱구 굴려도 좋은 생각 나오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이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바로 이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보다 똑똑한가 보다 타인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잘 기울이느냐가 한 사람이 발전하는데 관건이란 얘기. 갑자기 예전에 써 놓은 글이 생각나는군. 오늘의 정처없던 얘기는 그 글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왜 이공대생들의 대화는 답답해질까?
- 아마도 2005-6 년 정도? BRIC 에 올렸던 글.
그건, 논리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 하면, 논리란, 그 형식의 정확성만을 보장해 줄 뿐이기 때문이죠. 누군가의 말처럼(아마 쇼펜하우어일듯...), 코끼리의 날개색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리 논리적으로 답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틀린 것이죠. 왜냐하면, 기본 가정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얼마 안되는 자신의 개인적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굴려서 논리적으로 답을 찾아내도 결국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래서 그 '논리적' 과정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자신의 그 좁은 지식에만 의존하여 만들어진 사실(혹은 결론)은 항상 2%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답답함은, 그 사람이 논리적이긴 하나, 갖고 있는 소재가 적을 때 더욱 심해집니다. 똑똑하기는 하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이것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생각의 폭이 좁다는 것. 그랬기 때문에, 공자는, "내가 하루 종일 식사도 하지 않고 (吾終日不食), 밤이 새도록 잠도 안 자고 생각해 보았으나 (終夜不寢), 무익한지라 (以思無益), 배움만 같지 못하더라 (不如學也)" 라고 했으며, 쇼펜하우어는,
"같은 물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이 둔해져서 결국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성도 같은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으면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라고 한 것은 아닐런지.
비교적 논리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의 범위가 아주 빠르게 확장되어, 나와 대화 상대 모두, 처음 그 대화를 시작할 때 갖고 있었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오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같은 이야기가 자꾸 반복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매우 서투르다는 것을 방증하며, 또한, 논리라는 그 형식이 제한된 지식과 사실에 적용될 때, 어쩔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도 문학과 상상력, 직관과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리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 논리가 '전부'는 아니라고...
수학의 그 엄밀함이 좋습니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공부했었습니다(super-senior...) 그러나, 제가 수학을 공부하고 난 후 느낀 것은, 전제가 틀리면 그 엄밀한 수학도 틀릴수밖에 없으며(틀린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옳은 결론을 도출한다면, 과정에 분명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이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주장(과학적 주장이든 뭐든, 그 어떤 주장이든)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한다면, 우선 그 가정의 옳고 그름부터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엄밀하고 정확한 절차는 그 다음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여, 정확한 논리로 지리한 싸움을 지속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수학을 포기하고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동료 수학자 이야기를 들은 수학자 가 말했다. '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을 하기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 - 사라와 함께 하면 수학이 즐겁다 by 사라 플레너리 중에서.
독서. 명작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을 읽어 보는 것이 논리적인 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플라톤의 '향연'이나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같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느냐 말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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