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밤거리를 걷는 것이다. 지나는 이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시골의 밤거리를 홀로 걷는 그 느낌. 가끔씩은 누군가가 한 명 정도는 같이 걸어도 좋다. 어쨌든 고요한 풍경 속과 조용히 어울리며 걷는 밤거리, 특히 어느 한적한 시골길은 언제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그래서 집에 오면 종종 산책을 나가고, MT를 간다거나 학회를 갔을 때도 될 수 있으면 날이 저문 후에 나와 얼마간만이라도 걸어 보려 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려있다는 것은 때때로 두려움을 이끌어 내지만,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어느 정도는 익숙함의 문제이다. 어둠을 낯설어하지 않기에 나는 별로 무섭진 않고, 외려 모든 소음조차 잠재워버린 그 고요의 힘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주 어딘가의 한적한 곳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잠시 정차해 있다 오는 것을 생각해 왔었는데 정신없이 생활해 오다 보니 잊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난 김에 그리 해 보려 했지만 너무나 추운 날씨는 쉽사리 그리 할 수 없게 하여 길지 못하게만 있다 왔을 뿐이다. 앞에도, 뒤에도, 저 멀리 어디도 인기척을 느끼기 힘들 길. 좋았다.
굳이 말하자면 기시감의 반댓말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이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과거의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 느낌, 이 아니라, 미래의 언젠가 경험하게 될 것 같은 그 느낌을 지금 느끼고 있다는 이 느낌. 여전히 나의 미래는 아직 그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 보다는 좀 더 큰 불확실성을 갖고 짙은 안개 뒤쪽에 있기에, 이 길을 걸어 나아가면 안개가 걷히고 난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기대가 두려움만 못하여 주춤거릴만큼은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다. 단순히 연구나 직업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고, 단순히 한달두달, 1년 2년 단기적 시점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고, 단순히 나 개인에 관해서 뿐만이 아니라, 연구에 관해서도 직업에 관해서도, 그리고 이상적으로 기대하는 그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여전히 불확실함을 내포한 기대감을 느낀다. 하나하나 밟아 나아가고자 하는 다짐은 오늘도 다르지 않다. 이제 겨우겨우 한 단계를 지나가는 시점이기에 그 기대가 더 클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래왔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현실이란 벽 앞에 서서 잠시 한 숨을 쉴 지언정 그 앞에 멈추어 서진 않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