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태양이
노을만을 드리운 채 사라져 가면
그리움만이 노을과 함께 하늘을 물들인다.
희미해지는 노을.
그러나,
노을은 어둠 속에서 별빛이 되어 홀로 빛난다.
경험은 때때로 짙은 그리움만으로 남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가슴 속에 묻은 젊은 날의 사랑도, 이제는 박제되어버린 열정의 과거도,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한 때, 영원할 것만 같던, 확실하고 확고하던, 그러한 것들. 하지만 시간에 닳아 헤지고 나면 몇 번의 지독한 몸부림 끝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마치, 능선을 막 넘어가려는 태양이 진한 노을을 남기는 것처럼. 찬란했던 과거는 결국 그리움만으로 남아 우리와 함께 남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도 조금씩 엷어 지고, 어느 순간엔가부터는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하지만, 뒤돌아 볼 여유가 생기는, 조용한 어느 저녁과 같은 날이 되면, 그리움만으로 남아 있을지라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가슴 속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추억들. 그리고, 비록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별빛이 되어 있을지라도 그리움은 때때로 우리를 안내해 주기도 한다. 마치,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알려 주는 별빛처럼.
누군가, 사르트르 였던가, 추억은 악마의 지갑이라고, 열어 보면 아무 것도 없다고. 아니, 나뭇잎만 있다 했었나. 뭐, 여하튼. 지나치게 과거에 얽메이는 것은 발 밑에 붙은 껌마냥 앞으로 걸어 가는 것을 거북하게 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린다면 무엇을 밟고, 어디를 거쳐 와서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 나는, 힘차게 나아가다가도, 이제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 버린 일들도 가슴 속에 담아 가끔씩 꺼내 보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