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것만 같았던 겨울이 어느 덧 다 지나고 있다. 나에게 찬바람은 언제나 감성적으로 따스함을 간직한 채로 남아 있기에, 다가오는 봄, 지나가는 찬 시절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지라도, 정해진 흐름에 따라 다시 돌아 온 이 봄날이 아쉽지만은 않다. 흐르는 시간 속에 변하는 세상과, 그 안에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은 때때로 세상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 되어 다가오곤 하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작게 남아 있는 몇몇 추억들을 애써 끄집어 내어 다시금 펼쳐 볼 때면 지금 이 시간 역시 그러한 추억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조금은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 MT 를 갔다 일찍 돌아 오던 길 위에 남겨진 기억 한 조각. 그 때 일찍 오는 사람이 나와 한 누나 밖에 없었는데, 그 누나는 운전을 하고 나는 옆자리에서 편하게 왔다. 길을 잘못 들어, 가지 않아도 되는 거리를 지나치는데, 마치 깨끗하게 닦아 놓은 수정구슬 속에 있기라도 한듯이 맑고 청명한 대기. 마음 같아선 잠깐 내려 마음이 찰 때 까지 머물다 오고 싶었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볼 요량으로 마음이 조금은 다급했을 일행이 있었기에 잠자코 밖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 때의 아쉬움이 마냥 아쉬움만으로 남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러나, 그러한 날은 언젠가 또 나를 찾아 올 것이란, 지극히 평범한 사실 때문.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은, 변하는 나를 언젠가는 다시금 같은 풍경 속으로 끌어들일 테니까, 변했지만 그대로인 그 모습 그대로의 풍경 속으로. 항상 그래 왔듯이.
정확한 것이야 알 수 없지만, 이제 이 곳에서의 생활이 그리 길지 않게 남아 있다는 생각은, 지금처럼 평화롭고 조용하며, 한적하고, 이제는 날카로움을 잃고 부드럽게 마음을 매만져 주는 바람이 언제고 부는 이 곳에서의 생활을 조금은 더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곤 한다. 장담하건데,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에도, 저 커다란 계단에 아무렇게나 앉아 군것질을 하며 오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기억은 즐거웠던 어느 날의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계단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없군. 내가 찍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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