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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시나브로 변하는 것이다

by adnoctum 2010. 6. 3.
2009-07-23 22:50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1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조금은 다르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많이 다르다.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아주 못된 사람도 하루하루 조금씩 변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시나브로 변하다가, 한방에 훅! 가는 것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뭐.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니나는, 자살을 하려 했는데, 결국 슈타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어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니나는 말한다, 그 때 자신을 살린 것은 자신이라고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니나만큼 삶에 충실하며 열정적이고 신념을 갖고 살 수 있는 이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1. 나빠지지 않게 조심하고,
2. 좋아지는 것을 조금씩 하고 - 소위 말하는 무위지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쥐새끼가 다리를 다 갉아 먹도록 모르다가 다리가 반토막이 날 정도가 되어서야 알아차리는 코끼리가 될 것인가? 하루하루, 합리화에 찌들어 반성 없이 보내는 날들이 모여 결국 사는대로 생각해 버리는 이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보내는 것이 지금 당장은 별 것 아닐지 몰라도,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는 1년, 5년, 10년이 지난 후 분명 위력을 발휘한다, 좋게든 나쁘게든. 문제는 왜 이 현실이 시궁창같은지를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에서 찾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것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신앙과 용기의 실천은 일상 생활의 세부적인 일부터 시작된다. 그 첫 단계는 언제 어디서 신앙을 잃는가를 주시하고, 이 같은 신앙의 상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합리화를 간파하고, 어디에서 우리가 비겁하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다시금 그것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신앙에 대한 배반이 어떻게 우리를 약하게 하며, 그 늘어나는 허약성이 어떻게 새로운 배반으로 이끌고, 계속해서 악순환을 이루게 하는지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과, 목적과, 욕구와, 가치관과 생각, 인식하는 것 등에 깨어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명백하고 명증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럴 때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어느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부유하다 결국 제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참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글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참고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하루만에 읽는다면, 자신의 책 읽는 습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아니면 생각을 빛의 속도로 할 수 있는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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