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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어디까지가 허영인가?

by adnoctum 2006. 7. 26.




   요 며칠 된장녀라는 말이 인터넷상에 꽤 빠르게 번져나간 듯 싶다. dc를 정기적으로 monitoring(?)하는 나로서는 그 만화가 그처럼 많이 번져나갈줄은 모른채 보아 넘겼다. 내가 쓰는 글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듯, 이 글 역시 그 만화는 단순한 출발점에 불과하고, 그에서 뻗어 나간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우리가 겪어 왔던 생활과 환경에 따라 각자 어디까지가 허영인지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소 호화스럽고 비어 있는 듯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해 속물이라 말하긴 좀 어렵지 않을까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허영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그 허영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 글을 참조. 간단히 말하면, 서로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에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은 중요했다는 진화론적 내용) 그러나 자신을 잃고 오로지 행복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란 참으로 불쌍한 생이라 생각해 왔다.



  이 점, 자신의 행복의 결정권을 남에게 맞겨 버리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허영이란 것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는데, 과연 그 허영이라는 것의 경계가 어디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dc에 있던 그 만화와 그에 따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도 눈이 많이 오면 버스가 못 들어가는 시골 집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도시의 많은 것들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만을 좇기 위한, 끈적거리는 욕망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원에서 10년을 살고, 강남 교보문고 앞 회사에서 10개월, 서울로 학교를 5년간 다니는 동안에도 이런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단지 무뎌졌을 뿐.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과 강남역을 거쳐 시골로 이어지는, 그 극단적 변화를 주말마다 경험하면서 그런 생각들은 점점 더 공고히 되어 가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과연 스타벅스와 던킨을 간다고 해서 남들의 시선만을 좇는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이것은 나에 대한 어리석은 합리화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던킨 도넛에서 밖을 보며 무엇인가를 먹는 그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빵 종류를 좋아해서. VIPS같은 곳은 고기를 원래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안 갔었다. 그러면서도 피자헛같은 곳에 가서 둘이 3,4만원(좀 많이 먹는다. 이 정도면 싼 값인가?)어치 먹고 나올 때는 꽤 있는 것을 보면, 돈이 궁해서 VIPS같은 곳을 안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던킨은 혼자 갈 때도 종종 있는데 보통 가면 5,000원 이상은 먹는다. 스타벅스는, 원래 커피를 안 좋아하서도 그렇고, 강남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곳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영 아니고 그 커피 냄새가 너무 싫어서 그냥 나와버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였다면 꽤 자주 갔을 것이다. 지금도 집에 갈 때 친구를 만날라치면 강남역 앞(여기가 제일 좋다. 집에 가는 버스도 바로 있고, 서점도 있어서)에서 아이스베리나 미스터피자같은 곳, 또는 KFC같은 곳, 하여튼 길가 옆 될 수 있으면 2층에서 먹을 수 있는 곳에서 만나서 항상 1,2만원어치의 군것질을 하고 간다. (술값 얘기는 안해도 되는 것인가? 둘이 3,4만원어치 술먹는 건 안 이상하고, 그 만큼의 서양의 무엇을 먹으면 이상한 것인가?)




   이런 생활은, 평소의 나의 차림이나 말투로 미루어보면 좀 어색한데, 왜냐 하면, 앞에서 말했듯이, 난 자본주의 자체에 좀 반감을 갖고 있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문화인이라고 보기엔 좀 힘들다고 하면서 저와 같은 도시 생활을 포함한 생활 방식은 좀 속물같다고, 고쳐야 한다는 투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집에서 지게질하다 나온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실제로 지게질하다 나갈 때도 있지만. ㅋㅋㅋ)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난 딱 저 정도의 생활 방식이 그냥 좋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먹으면서 그냥 밖을 보는 것, 그게 좋은데, 그 곳은 그런 분위기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까는 결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물이라 일컫고 싶은 사람들 중에서도 결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냥, 그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에서 그런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단지 그런 요인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도 있겠지.



  학교 컴퓨터 쓰는 것이 불편해 노트북을 샀던 나와, 학교 밥이 맛이 없어서 주위 호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사람은, 그 대상이 다를 뿐 자신의 기준을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좀 더 일반화시키면, 사람마다 자신이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을텐데 사실 그런 것은 남이 보면 참 쓸데없이 돈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ps. 그렇다고 허영에 가득찬 한국적 분위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유인촌(텔런트)은 압구정 일대에 소극장을 열었다 망했다. 그는, "이 정도 살면 사람들이 문화적 욕구를 느낄텐데, 정말 실망이다."란 말을 했었지. 세네카의 "행복론"을 읽고, 허영은 2,000 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라기도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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