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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낙관적 염세주의

by adnoctum 2004. 11. 18.

  체념이 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프지 않음' 혹은 '분노를 느끼지 않음' 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염세주의는 좀 다른 것 같다. 세상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세상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생명인 이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분명 불완전하다. 감정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도 있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 속으로 숨을 때도 있고, 나태 때문에 불의에 눈감아 버릴 때도 있으며, 허영 때문에 목숨을 버릴 때도 있고, 이기심 때문에 투쟁이 생겨나고, 오만 때문에 편견이 생겨난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분명 인간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허망한 욕망 중에 가장 우끼고 보잘 것 없고 하찮지만 강력한 삶의 동기가 되는 것이 '허영'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찌되었든 모든 학문적 욕망의 최종 목표의 대부분은 '명예'로 표현되는, '허영'이다. 여자가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남자가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것도, 권력을 잡고자 하는 것도, 학력을 갖고 싶어 하는 것도,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예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허영은 필요했다. 인간은, 어쨌든, 집단생활을 한다. 아마도 집단생활을 함으로 인해 생존가능성이 높아져서, 집단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개체일수록 잘 살아남아서, 현대 시대에는 주로 집단생활을 잘 하는 개체만이 남은 것 같다. 그렇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간은 사회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 허영이 싹튼다. 집단생활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남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 '남에게 인정을 받는 것' 때문에 허영은 태어났다. 비록 허영이 심각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나, 허영 그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우낀다. 이성간의 사랑? 우정? 부모간의 사랑? 민족애? 이성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은, 결국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켜 종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 삶에 있어 사랑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도 큰 것을 보면, 종의 유지가 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으리라. 시, 노래, 영화, 연극, 드라마의 공통된 소재는 결국 '사랑' 혹은 '결혼'이다. 이성 간의 사랑은 '성기'라는 상징적 부위를 정점으로 하여 결국은 '성적 쾌락'을 통해 새로운 개체의 탄생을 유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것에 어울리지 않던 개체들은 중간중간 사라져 버렸고, 그래서 지금 남은 개체들 대부분은 '사랑'에 그렇게 목을 멜 수밖에 없다. 우정은, 역시, 다른 개체에게 호의적일수록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에서 만들어 진 하나의 결과에 불과하고, 부모간의 사랑도, 자신과 유전관계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개체와 함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범위가 조금 더 커져서 '민족'이 되었을 뿐이다. '민족', 그 허황된 논리. 현대의 비극은, 물리적 영향력이 민족의 범위를 넘어간 시점에서, 인간의 사고력은 아직 민족의 범위를 넘지 못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인간은 '사랑'이라는 종의 유지 방법에 의해 종을 유지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종에 불과하다. 동물들이 먹고, 교미하듯이 인간도 먹고 교미할 뿐이다. 단지 인간은 '사고'의 관념 체계를 이용해서 교미상대를 찾는데, 그것 때문에 수많은 것들이 만들어 졌고, 그 중에 정점은 '허영'일 뿐이다. 그리고, 집단생활로 인해 민족이니 가족이니 하는 상징이 만들어 졌을 뿐이다. 만약 인간이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인간은 또한 유한하다. 제아무리 권력자나 부자라 한들, 결국 죽는다. 죽음, 그것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2가지 필수 요소 중에 하나이다. 죽음이 있어 인간은 생에 그렇게도 집착을 하게 되고, 유전자를 남기고자 그렇게도 애를 쓰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대의 부끄러움이 죄가 되지 않을텐데'-...베르길리우스였던가...

  이렇듯 인간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고자 아둥바둥하는 한 생명체에 불과하다. 게다가 모순 투성이에다 오류 투성이.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다!

  누군가가 싫어진다면, 그 싫어지는 이유를 찾으면 결국 둘 중에 하나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상대방이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거나, 내가 내 앞에서 보여주고 있거나. 어리석거나 허영을 부리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어쨌든 상대방이나 내가 혹은 그 둘 다 이런 불완전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밖에 안된다. 둘 다 완전하다면, 충돌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의 이런 원초적 한계를 인정하고, 이런 불완전함을 보이는 상대방 혹은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관용이다. 염세주의에서 관용이 나왔다.

  세상은, 아니, 인생은, 그리 아둥바둥 살아서 크게 얻을 것도 없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무엇인가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 하면, 다시 말하거니와, 시도해서 실패하여 무엇인가를 잃는다 해도, 그것은 매우 하찮은 것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새털처럼 가볍고, 먼지처럼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인생에서 얻거나 잃는 것도 역시 보잘 것 없고 하찮기 그지없다. 어차피 사랑하게 태어 났다면, 사랑하며 살면 된다. 사랑 고백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 터질듯한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시선은 계속 한 곳을 향하게 되겠지만, '아, 인간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졌구나'하고, 그냥 고백하면 된다. 실패하면, 수많은 기회 중 하나를 잃었을 뿐이고, 실패한 들 세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무엇인가가 두려워 시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단 태어났으니 마음 껏 즐기다 갈 수 있는 인생을, 정말로 태어나지 않은 듯 태어났다 가는 것밖에 안된다. 이왕 태어난 거,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며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던가.

 

내 글? 그래, 나 역시 내 사고방식에 갇혀 살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착각하는, 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비록 당신이 나의 이런 불완전함을 알고 어떤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역시 하나의 틀에 얽메인, 당신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는 나의 이런 불완전함을 알기에, 자존심으로 표현되는 허영을 지키려는 생각도 없고, 단지 내 잘못을 깨달아 좀 더 발전된 모습이 되길 바랄 뿐이다.  


'메이팅 마인드'니, '이기적 유전자'니 하는 것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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