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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관련/그냥생물학

혈액형과 수혈, 그리고 면역 시스템

by adnoctum 2010. 2. 1.


   들어 가기에 앞서. 무엇인가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그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이 많은 경우가 있다. 매우 단순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도 그러한데, 앞 부분에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뒤쪽에서 그 이야기들이 다 꿰어 맞춰질 것이니,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AB형은 A, O형과 B형의 피를 모두 받을 수 있다. O형의 피는 누구에게나 줄 수 있지만, O형은 오직 O형에게서만 수혈을 받을 수 있다. 이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수혈이 가능한 혈액형 관계는 사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의 작동 방식 때문에 결정된 것이다. 어떻게 하여 그런지 살펴 보자. 이것을 살펴 보기 전에, 우선 혈액형이란 무엇인지 알아 보자.

내 손의 상처

내 손의 상처




  지난 토요일(사진은 일요일에 찍었다), 조카들과 노는 도중, 바위 위에서 굴러 떨어져 손이 까졌다. 피가 나길레 조카 녀석에게 말했다. "얘들아, 삼촌 피난다. 우리, 가서 현미경으로 피 볼까?" 피가 굳기 전에 얼른 들어가서 적혈구를 보았다. 적혈구의 첫 번째 임무는 산소를 운반하는 것이다. 적혈구는 그래서 분화 과정에서 핵도 없애버린다.



  혈액형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흔히 Rh식과 ABO식이 많이 사용된다. 수혈을 할 때는 이 두 종류의 혈액형이 수혈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Rh식은 Rhesus 라는 인도산 원숭이


얘가 Rhesus 원숭이이다.

얘가 Rhesus 원숭이이다.



 

피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데, 이 원숭이의 피와 섞어서 엉기는 피를 Rh+라 한다. ABO 혈액형(血液型, blood type)은 적혈구의 표면에 붙어 있는 분자의 형태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각각의 혈액형 별로 붙어 있는 분자를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각 항원의 구체적 화학 구조는 이 글의 제일 뒤쪽에 있음
. 여기서 말하는 항원이란 적혈구 표면에 붙어 있는 특수한 당단백질(당과 단백질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O형이 갖고 있는 당단백질을 H 항원이라 하고, 이것에 한 개의 당이 더 붙어서 A형이나 B형이 되는 것이다.

 

 

  세포 표면에 붙어 있다는 것은 매우 많은 것을 의미한다. 왜냐 하면, 세포는 서로의 표면에 무엇이 있느냐를 이용하여 서로에게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제 면역 시스템을 잠깐 살펴 보자. 면역 시스템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세포가 직접 이물질이나 정상이 아닌 세포 등을 없애는 것이고, 둘째는 항체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병원균이나 비정상 물질을 없애는 것이다. 항체가 병원균에 붙으면, 대식세포들이 항체가 붙은 병원균을 먹어버리거나, 항체 자체가 병원균 막에 붙어 구멍을 뚫어 죽일 수도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항체는 내 몸에서 만든 물질은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갖고 있는 항체가 내 간에서 나오는 특정 물질을 인식한다면, 내 간세포가 내 면역 세포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내 몸에 있는 면역 세포가 내 몸에 있는 물질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자가면역성 질환이다. 예를 들면 관절염이나 제1종 당뇨병.  

 

  그렇다면 어떻게 내 몸에서 만들어진 항체는 내 몸에 있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참고로 이와 같은 현상을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라 한다. 매우 간략하게 항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항체는 백혈구의 한 종류인 B세포에서 만들어 진다. 뼈의 안쪽에 있는 골수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B세포는, 성장 단계에서 두 가지의 test를 받게 된다. 하나는, 아무런 물질도 인식할 수 없는 세포는 죽이는 것이다(이러한 기작을 positive selection이라 한다). 왜냐 하면, 이런 세포는 내 몸을 공격할 위험은 없지만, 동시에 병원균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내 몸에서 나온 물질을 세포에게 준 다음 그 물질을 인식하는 세포를 죽이는 것이다(이러한 기작을 negative selection 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결국 끝까지 살아 남는 B 세포는, 적당히 생체 물질을 인식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내 몸에서 나온 생체 물질은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세포들이다.

 

  위와 같이 성장이 끝난 세포들은 항체를 만들어 내며 살다가 며칠 후에 죽게 된다. 단, 죽기 전에, 자신의 항체로 딱 잡을 수 있는 병원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물질을 만나게 되면, 항체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해내는 plasma cell로 변화하여 항체를 엄청나게 쏟아 내고, 몇몇은 몸 속에서 계속 살아 남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항체로 잡을 수 있는 물질을 만나서 살아 남게 되는 세포를 memory B cell이라고 하는데(이것이 예방 접종의 원리이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함), 어떻게 그러한 B cell이 계속 살아 남을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B 세포들은 적절한 병원균을 만나지 못하면 며칠 이내에 죽게 되는데, 그 사이에도 계속 항체를 쏟아 낸다. 어디에? 혈관과 림프관에. 그럼 다시, 피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나만 인가?-_-;;)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피란, 적혈구 + 백혈구 + 혈장 + 혈소판 등의 혼합물이다. 피가 붉게 보이는 것은 적혈구 때문인데(그럼 왜 적혈구는 붉은 색일까?), 핏속에는 적혈구 이외의 여러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혈장에는 여러 단백질과 면역단백질(cytokine, 번역된 용어가 없군...>.<'')들이 들어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항체도 들어 있다., 여기서 이제 오늘 말하고 싶었던 것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수혈은 필요에 따라 혈장의 특정 요소만 받을 수도 있고, 피를 전체 다 밭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적혈구를 수혈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때, 만약 내가 A형이라면 나의 적혈구에는 A 항원이 있고, 혈장에는 A 항원에 대한 항체가 없다. 왜냐 하면, A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는 성장 과정에서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B 항원을 인식할 수 있는 항체들이 있을 것이다*1). 왜냐 하면, 그 항체를 만드는 B 세포는 성장 과정에서 죽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O형의 혈장 안에는 A 항원과 B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가 모두 있다. 따라서 내 적혈구를 O형에게 주면, 내 적혈구가 O형의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 A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에 의해, 여러 경로를 통해*2)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이다. 또는 내가 준 적혈구들끼리 엉겨 붙을 것이다. 쇠구슬이 여러 개 있는 것에 자석을 갖다 대면 자석과 쇠구슬이 엉기는 것처럼. 결국 O형의 혈장 속에는 A 항원과 B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O형은 A, B, AB형에게서 피를 받을 수 없다. 반면 AB형의 경우, 적혈구에 A 항원과 B 항원이 모두 있기 때문에 혈장 속에는 A 항원과 B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가 모두 없다. 따라서 A형과 B형에게서 수혈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A형의 적혈구에 있는 A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도, B형의 적혈구에 있는 B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도 AB형의 혈장 속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O형의 적혈구에는 A 항원과 B 항원의 전구 물질만 있는데, 이 전구 물질은 A 형이든 B 형이든 AB형이든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이 전구 물질에 대한 항체는 모든 혈액형에서 나타나지 않는다(특수한 경우에는 H항원에 대한 항체가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O 형은 AB형에게 수혈을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수혈 가능 여부는 기부자의 혈액형과 수혜자의 혈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고,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적혈구 수혈 가능 관계. 물론 같은 혈액형끼리는 당연히 수혈이 가능하다. 원론적으로는 위와 같이 수혈이 가능하지만, 종종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원칙적으로 같은 혈액형으로만 수혈을 한다고 한다.

 

 

 

 

 

*1) 그런데 왜 A형의 경우 B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를 갖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 가지 가설은 박테리아나 병원균에 대한 일반적인 항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B 항원에 대한 항체도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2) 특히 중요한 것은 세포막이 뚫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혈구 안에 있던 헤모글로빈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참고

Lehninger, Principles of Biochemistry, 3rd Edition, p374. Figure11-12에 나온 것 중 GalNAc는 GlcNAc를 잘못 표기한 것이다.

Stryer, Biochemistry, 5th Edition, p305. 이 책에 있는 그림이 제대로 된 것이다.

각 분자의 화학식은 위의 책이나 다른 생화학 책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sphingosine과 fatty acid가 세포막을 형성하는 다른 지질과 같이 소수성이기 때문에, 이 두 부분이 다른 세포지질과 함께 세포막을 형성하는 구성 성분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당 부분이 세포 밖으로 삐져나와서 항원으로서 작용을 하는 것이다. 전사 후 수정 작업(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에 의해 O 항원(H-antigen)N-acetylgalactosamine이나 galactose가 더 붙는데 이 기능은 glycosyltransferase가 한다., 혈액형은 어떤 glycosyltransferase gene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원본 작성일 : 2006-08-0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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